[기타] <인간의 맹목적인 이익추구와 탐욕의 추구는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저는 2019 7 11, JTBC 뉴스 룸에서 나온 보도를 보았고. 보도에 대한 생각, 의견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도 내용은 "세계 곳곳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현상의 이유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도에선 이런 기상 현상이 일어난 원인에 대해 설명해주었고 "우리나라엔 어떤 영향을 것인가" 대해 얘기하고 끝을 맺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시작하겠습니다.


기상현상을 분석해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현상을 분석하고 우리들 각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있게 뭔가를 던져 줬으면 좋겠어요.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런 기상현상이 일어났어."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나아가서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런 기상현상이 일어났어. 그리고 지구온난화는 우리가 일으킨 거야.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묻고, 성찰할 있게 하는 것까지 나아가야해요


지구를 파괴하고 변화시키는 흐름을 주도하는 정부와 기업이라고 생각해요그리고 지구의 우리들이죠. 우리는 매년 지구가 더워지고 기후가 하는 느끼고 있어요. 지구가 변화하는 멈추려면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각자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해요. 행동의 변화는 생각보다 변화를 가져올 거에요. 시작하기만 하면 각자가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거기에 따른 변화는 빠르게 수도 있고, 느리게 수도 있을 거에요무엇보다 중요한  '지금우리가 있는 일을 하는 중요하고, 각자가 있는 일을 하는 중요해요. 작은 것이라도.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스스로를 봐야해요.


우리의 '욕구(욕망, 탐욕, 가지고 싶어하다, 누리고 싶어하다. 이런 의미로 사용할 거에요.)' 점점 켜져가요. 우리의 욕구가 커질 수록 우리가 필요하게 되는 많아지고 그만큼 소비의 양이 많아져요. 덩달아 생산량도 많아지게 되요. ,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필요하게 되고, 그것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파괴해요. 기업은 욕구를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고, 많은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죠. 자극이 다시 소비를 불러오고 자극에 익숙해진 우리는 새로운 원하게 되요. 새롭고 다양한 것들이 등장 하지만 그것은 금방 익숙하고 오래된 것이 되어버려요.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게 되죠. 이런 자극과 욕구는 순간적이고, 절대 채울 없어요. 우리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남은 것들은 버려지는데 대부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태워지거나 속으로 가고, 강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흘러가고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요. 이상 각자에게 '필요한 ' 늘리지 않아야해요


우리는 생활(, , )하는 과정과 욕구를 채우고, 버리고, 처리하는 모든 과정에서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는데 에너지는 대부분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어요. 심지어는 물건을 운송하고, 우리가 이동할 때에도 화석연료를 쓰죠. 에너지를 사용하고 나면 열과 가스, 먼지(유해물질) 같은 발생하는데 이런 것들은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이상기후',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여러 이름으로 돌아와요.


우리는 자연과 멀어지고 스스로를 자연과 분리해요. 그리고 자연을 개발하고, 착취하고, 이용하며 자연에서 얻어진 것들을 누리려고 하죠. 이익과 욕구를 채워줄 대상으로 보는 거에요.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우리가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 해야되요. 우리는 자연 자체애요도시와 조금 떨어진 위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면 알거에요.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보면 알게 될거에요.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보면 알게 되겠죠. 우리가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을. 자연 속에서 나고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은 자연이 완전히 파괴되고 자원이 고갈되는 순간에 모두 멈추고 무너질 거에요


홍세화 에세이 <<생각의 좌표>> 중에서. "<탐욕> 나는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다고 믿는다. 자본주의에 미래가 없는 것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인간의 자발적 반란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때문이라고 전망한다. 그때까지도 자본주의는 탐욕스런 아집을 부리겠지만 끝내 종말을 고하고 것이다. 인간은 전쟁 수행자들이고 인간 문명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자연의 반란은 지배, 피지배의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자연 모두의 공멸을 가져온다


인간은 지배걔급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굴종한다. 인간이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면 억압과 착취는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죽는 대신 굴종을 택한다. 인간의 삶은 모진 것이며 인간에 대한 인간의 억압과 착취는 계속된다. 자연은 인간의 억압과 착취에 굴종하지 않고 스스로 파괴되어 죽는다. 자연이 놀라운 복원력을 가졌다고 하지만 인간의 파괴 행위는 속도에 있어서 자연의 복원력을 앞지른다. 그리하여, 자연의 죽음 앞에서 인간은 끝까지 발버둥치겠지만 인간 또한 어쩔 없는 자연의 일부이므로 함께 죽을 밖에 없다." 102-103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탐욕은 통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오만성과 결합해 "정말 이래도 되나" 같은 성찰적 물음을 멀리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시장만능주의는 소비를 미덕으로 하는 단계를 넘어 탐욕을 미덕으로 칭송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간은 이제 다른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멈추지 않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의 몫까지 착취한다. 마하트마 간디였다. "신은 우리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켜줄 없다." 말했던 이는. 신조차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켜줄 없다면, 무엇이 인간의 탐욕을 채워줄 있겠는가? 결국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공멸뿐인가." 103-104


"자본주의 이후 인간은 더욱 오만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땅에서 멀어졌고 사람들이 가졌던 자연에 대한 외경심은 점차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워 졌다. 인간의 탐욕은 오만에 비례하여 더욱더 거칠 것이 없어졌다. 탐욕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착취의 뿌리이듯이, 다른 인간에 대한 지배와 착취, 최종 형태인 전쟁 또한 인간의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뿌리는 이제 너무 깊이 박혀 인간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데까지 것이고, 마침내 인간은 자연의 반란 앞에 직면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할까.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 실체를 드러냈다.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인간은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다른 인간의 자발적 반란에 대해서는 전쟁과 탄압으로 억누르고 굴종시켜 왔지만,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아무리 오만한 인간이라도 자연에 맞서 전쟁을 벌일 없다. 자연과 벌이는 전쟁에서 이긴다는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게다가 자연은 인간과 달리 인간에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면 스스로 파괴되어 죽을 살아남으려고 굴종하지 않는다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어떻게 끝날까? 자연의 비자발적 반란 앞에서 결국 투항할까. 그리하여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을 존중하듯 다른 인간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갈까, 아니면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공멸의 길로 나아갈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은데 인간의 마지막 구원자인 자연도 질문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주지 않는다. 아무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생태공동체는 작은 단위에선 가능할지 모르나 단위에선 아직 진정한 씨앗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107-108


<<무탄트 메시지>> 말로 모건, 류시화 옮김

<<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양희승 옮김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강승영 옮김

<<조화로운 >>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류시화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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